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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미산 걷기명상일지
작성자 능인행 작성일 2018-08-31 조회수 5283

수미산을 다녀와서


6월 29일  성도를 향하여

낯선 사람들과 함께 수미산 순례를 향하여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기류가 심하게 흔들려 앉아서 자비수관을 하였다. 엔진소리가 뒷좌석이라 크게 들려 소리의 알아차림을 하면서 똑같은 소리가 없으며 머물지 않고 흔적 없음을 알아차림하자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기류로 몸이 흔들릴때도 흔들림에 몸을 맡기면 물결이 출렁이듯 흔들리지만 불편함으로 진심이 올라오지 않음을 본다.

객관적으로 몸의 흔들림을 지켜보니 몸은 사라지고 끝이없는 드넓은 대지위에 앉아 있는듯 우주와 하나되는 (텅빔속에) 나를 계속 지켜 보았다.

호텔에 도착해서 스님께서 자비감로수 멘트를 해 주셔서 함께 명상을 하였다. 손, 발 끝으로 강한 에너지가 몰리면서 약간의 열기와 미세한 진동을 알아차림 하였다. 이전에는 에너지 파장이 느껴져도 미세한 진동은 알아차림 못하였다.


6월 30일  라싸를 향하여

새벽 두시에 기상해서 공항으로 갔다. 예민한 곳이라 그런지 탑승하는데까지 여러번 검색을 하였다. 지루함도 불편함도 있었지만 짜증스럽거나 불쾌한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님께서 불만족은 괴로움이라 하시면서 탐진치가 함께 한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라 빠름에 익숙한 일상을 되돌아 보았다. 

라싸에 도착하자 약간의 두통과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의 움직임을 알아차림하고 짐을 찾을 때까지 자비면화수를 하자 두통은 사라지고 호흡도 편안하게 되었다.

심장이 빠르게 움직이자 순간 두려움이 올라와 고통임을 알아차리고 사유 하었다.

티벳의 최초의 사원이자 파드마삼바바에 의해 세워지고, 인도불교(점수)와 중국 선불교(돈수)의 논쟁으로 유명한 삼예사원에 갔다.

마침 축제기간이라 많은 스님들께서 3일동안 기도와 행사를 이어간다고 한다. 스님과 만다라를 보기 위해 산에 올랐다. 조금은 걱정스러웠지만 발바닥과 손끝, 정수리 감각을 전체 보기를 하면서 걷자 편안하가게 올라 갈 수 있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 하나가 되며 앞의 시야도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의식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산에서 내려다 본 삼예사원은 웅장하다. 주변 환경의 변화를 통해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한 모습을 유추할 수 있었다. 오색의 만다라 형태의 탑을 바라보면서 고정된 것도, 항상한 것도, 영원할 것도 없으며 이 순간에도 머무름이 없음을 알아차림하고 변해가는 모습에 불만족이 생기고 괴로움이 오는 것에 대해 잠시 서서 사유를 하었다.

저녁에 처음으로 오색차 명상을 하였다. 차탁에서 붉은색 홍차를 우려 마시면서 온 몸으로 스며들게 하였다. 마치 흰 명주 손수건에 물이 서서히 스며들듯... 몸 전체가 붉은색으로 변하였다.  발끝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차를 마시면 발끝만 남고 텅 비었다. 손끝에 할 때도 같았다. 정수리에 할 때는 코끝이 시원하면서 에너지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알아차림 하였다. 전체보기를 하자 몸은 사라지고 붉은 원안에 앉아 있는 나를 보았다. 계속 지켜보기만 하였다. 자비수관을 할 때도 몸은 사라지고 텅빈 허공과 하나되어 지켜보기만 하었다.


7월 1일  포텔라 궁, 드레퐁 사원, 조캉사원

조캉사원에는 많은 티벳 사람들이 오체투지하며 절을 하고 있었다. 한 켠에 앉아서 나도 좌선을 하었다. 울컥하면서 뜨거운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집중하기가 힘들어서 심장박동을 지켜보면서 평정심을 찾았다. "저들은 무슨 서원을 하고 있을까? 그들이 처해진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에 연민심이 마음을 움직였는가 보다. 그들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형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원망이나 분노보다는 간절함과 밝음, 선한 모습이 더 많았다. "조고각하" 나를 돌이켜보면서 나의 상황에서 얼마나 수행에 매진하는가를 되돌아 보았다.

걸으 면서 발바닥 감각에 집중하면서 걷자 높은 포텔라궁을 오를 때도 숨이 차지않고 평지를 걷는듯 하였다.

발이 닿고 앞으로 나아가고, 다시 바닥에 닿을 때 일어남과 사라짐만 있고, 발의 움직임에 흔적이 남지 않음을 알아차림 하면서 과거는 지나가서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아서 없으면 현재도 매순간 변하여 머무름이 없음을 알아차림한다. 쉬면서 전체보기를 하자 몸도 사라지고 포텔라 궁안에 홀로 앉아 있는 나를 지켜본다. 텅빔 속에서 사람들의 말소리, 자동차 소리 등 여러 소리가 들리지만 의식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저녁에는 스님과 순례자들과 함께 자비감로수를 하였다. 감로수를 붓자 온 몸이 동굴에 앉아 있는듯 시원하고 청량하였다.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감로수가 흐르는 것이 선명하게 관찰 되었다. 머리에 통증이 일어나 더 집중적으로 감로수를 붓고 객관적으로 통증을 살폈다. 통증이 엷어졌다, 강해졌다를 반복하다 사라졌다. 통증으로 인하여 괴로움이 생기니 약간의 화가 올라옴을 알아차림한다. 괴로움이 "고"임을 알아차림하고 사유한다. 두통을 일으키게 만든 원인을 사유하고 마음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사유했다.  


7월2일  출푸사원,  세라사원

출푸사원으로 가는 도중에 좌선하다가 졸았는데 여러사원들이 보였다. 어제 둘러본 사원도 있고 아닌것도 있고. . . 꿈과 현실이 다르지 않다고 스님께서 말씀 하셨는데 어제 본 사원들이 머리속에 머물고 있는듯 하다.  티벳 스님들께서 경전 공부 하시는 한쪽 귀퉁이에 앉아서 좌선을 했다. 스님들께서 읽으시는 경전소리, 북소리가 똑같은 것이 없음을 알아차림하고 시간은 지나가서 흔적도 없고 지나간 과거는 돌아오지 않고 현재 이 순간을 보고 있을 뿐이다. 소리의 울림(진동)이 가슴에 와 닿자 잠시 소리속에 내가 갇혀 있는듯 했으나 끌려가는 것이 아니고 소리를 보는 나를 보고 있었다. 도반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관세음보살 진언을 하자 스님들의 경 읽는 소리와 함께 공명을 일으켜 손끝으로 강한 에너지들이 뭉침을 알아차림하고 살피자 물결이 일듯 사라졌다.

어제도 방바닥에서 울리는 진동을 알아차림하고, 출푸사원에서 강한 에너지 파장을 잠시 느꼈고, 세라사원에서 스님들의 공부 문답(체니)하는 모습을 보고 부럽기도하고, 상상으로 그 속에 있는 나를 떠 올려 보기도 한 탓인지 머리에 다른 에너지의 파장과 부딪침을 느꼈다. 어지럼증이나 현기증이 아닌데 땅의 흔들림이 보였다가 파도가 일듯 바닥의 출렁거림이 보이기도 하였다. 스님께서 에너지 파장의 부딪침이라 말씀해 주셨다.

저녁에 스님께서 발바닥, 손끝, 정수리 감각에 집중하면서 심장박동 보기를 가르쳐 주셨다.  발바닥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심장을 지켜보자 기운이 아래로 쭉 내려가는 것을 알아차림하고 정수리에 집중할 때는 막혔던 코가 시원하게 뻥 뚫리는듯 했다. 정수리에서 손끝, 발바닥까지 한번에 보기를 하자 몸이 편안해지고 심장 박동은 없는듯 하면서 주변이 텅빈 상태가 되어 공간과 하나가 되었다. 가슴과 발바닥, 손끝 사이의 공간이 좁지만 텅빈 공간은 라싸 시내를 둘러쳐진듯 했다. 의식을 발바닥에 두면서 심장박동 바라보기를 처음 했는데 의식확장은 물론 공간도 순간 넓어짐을 알아차림하고 관찰 하였다. 사원을 이동하면서 수행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

차에 타서 있을 때는 머리가 조금 아프기도 하여 알아차림하고 관찰하면 사라진다. 그런데 사원에 도착하면 몸은 새털처럼 가벼워 4천고지에 있음을 잊게한다. 발걸음이 가벼워 저절로 걷는듯 하다.


7월3일  캄파라패스,  암드록촉 호수,  백거사

차를 타고 가면서 자비감로수를 하였다. 라싸보다 추워서 따뜻한 감로수를 부어 주었다. 아직 몸이 불편하여서 (두통 아닌 머리 통증) 나에게 위로의 말을 해 주면서 감로수를 부었다.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라고 반복해서 머리에 부어 주면서 멘트를 하자 점점 머리의 울림이 줄어 들었다. 머리 울림으로 불편함이 괴로움임을 알아차림 하면서 사유룰 하니 나라고 할 것도 아닌 이 몸에 집착할 것이 없음을 아니 편안해진다.

캄파라패스에 도착하여 걷자 해발이 높음이 드러났다. 머리가 흔들리며 숨이 찼다. 호흡이 거칠어져서 발바닥 감각 알아차림을 하자 편안해졌다. 하지만 차에서 내릴 때 고산지대라는 것을 잊고 평상시처럼 걸었던 것은 알아차림을 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캄파라패스를 오를 때까지 안개가 계속 변하였다. 현재 이순간이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고 암드록촉 호수 쪽으로 산등성이를 넘자 날씨가 완전히 변하였다. 항상할 것이 없음을 보여 주었다.

자비심을 갖고 주변을 바라보면 원망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음을 산등성이를 넘자 변해버린 날씨를 보며 생각 하였다. 암드록초 호수에 도착하자 스님께서 물 색깔이 이전과 다르다고 하셨다. 주변 환경이 그만큼 변했다는 말씀을 하신것 같다. 이 순간도 변하는데 하물며 몇년 전 물이 오늘과 같을까?? 하고 사유하였다.

호수를 바라보니 반대편 풍경이 그대로 거울처럼 비추었다. 수심에 따라 색의 변화가 있었고 물결이 일자 비추던 모습이 순간 변하여 다른 모습이 되었다. 모습이 변한 것인가? 보는 마음이 변한 것일까? 존재하는 모든것은 자성 없음을 사유하면서 무상과 무아, 존재 없음에 대한 괴로움(아름답게 비추던 모습이 사라져)을 사유 하였다.

설산(만년설)이라고 하였는데 기후 온난화 탓인지 많이 녹아 설산이라기에는 말이 무색하다. 녹아 내린 설산을 보면서 영원할 것도 없고, "있다"라고 하는 불변하지 않는 존재는 없고 상호의존함을 알아차림 하면서 사유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순간에도 설산의 눈은 녹고 있을 것이다. 찰나찰나 변하는 모습과 스쳐지나가는 한 티끌의 인연이 매치된다.

제일 큰 스투파(탑)가 있는 백거사에 들렸다. 15세기에 만들어진 탑인데 각각의 전각과 탱화가 번영 하였을 당시를 유추하게 하였다.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화려했고 역사적으로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서인지 숙연했다. 알아볼 수 없는 벽화와 탱화들, 잘 보존된 탱화들, 보수하고 있는 전각과 탱화를 보면서 무상함을 본다. 집착할 것도 없고 탐심과 진심을 낼것도 아닌데 얽매여 있는 나를 본다.

버스에서 자비 감로수를 하였다. 덜컹거리는데도 의식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몸이 사라지고 엉덩이 감각만 남는다. 뻣뻣함이 거칠어지고 다시 부드러워지며 편안해진다. 넓은 들판에 앉아 있는듯하다. 이전보다 빠르게 한공간 되기가 되고 편안하다. 덜컹거릴 때 흐트러지기도 하지만 이내 텅빈 공간으로 돌아온다.

지나온 길을 생각하면 뒤에 눈이 달린듯 보여진다.

노란 유채꽃과 푸른 밀밭, 사막같은 주변과 푸르름이 짙어가는 느티나무, 곳곳에서 공사하는 사람들 모습이 생각과 동시에 보여진다. 저녁에 순례대중과 함께 자비면화수를 하였다. 긴 시간 차를 타고 온 탓인지 위가 불편하여 쓰다듬자 서서히 가라앉았다. 등을 쓰다듬자 뼈가 검게 보이더니 건물이 푹 꺼진듯 내려 앉으면서 한줌의 재처럼 변하였다. 나라고 할것 없음을 무아임을 알아차림하였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어서 스님께서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떠 올랐다.  


7월4일  타쉴훈포 사원

어제가지 에너지 파장의 부딪침으로 조금 불편 했는데 오늘은 언제 그랬나 할 정도로 맑고 상쾌하다. 몸도 마음도 편안한 상태라 그런지 사원에 도착해서 걷는데 청량함과 행복함으로 마치 익숙한 곳에 온듯 하였다. 스님과 순례대중과 함께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명상을 하였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 하기를 발원 하였다. 잠깐이지만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일체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발원 하였다. 온 몸이 따뜻해지고 편안했다.

판체라마가 모셔진 전각에서도 명상을 하는데 뒷목에 손바닥보다 더 넓게 시원한 느낌이 들어서 벽 가까이 서서 그런가 했는대 다른 전각으로 이동하고 나올 때까지 그 현상이 지속 되었다. 청정함 때문인지 사원을 거닐는 동안 경안상태가 유지되고 행복감이 충만했다. 탱화의 한 벽면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과거의 모습은 변하여 가고 다시 그리는 한 단면은 현재의 모습이고 미래에는 온전하게 그려지면 다른 모습으로 변할것임을 유추하게 한다. 그러나 지나간것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현재 그려나가는 것도 과거일 뿐이다. 곳곳에 새겨진 진언과 부처님 상호, 수인, 스님들의 모습과 이곳 티벳 사람들의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수행하는 모습을 비추어 본다. 지금의 나는 저들처럼 행복하게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순수한가? 사원을 둘러 보면서 만나는 티벳 사람들을 볼 때 편안하고 자유롭게 종교생활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스님과 순례대중과 함께 두번의 차명상과 자비손 명상을 하였다. 차 명상을 하며 차를 준비하고 마시는 모습이 선명하게 인식되고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모래에 물이 스며들듯 한다. 정수리쪽으로 올라갈 때 코가 시원하면서 머리가 맑아진다. 온몸이 붉은 색으로 스며들고 밖으로  스프레이하듯 뿜어져 나간다. 온 주변이 붉은색으로 변하여진다. 밖으로 품어져 나갈 때 금빛으로 변하기도 한다. 처음 차 명상을 할 때는 스님 멘트에 따라 했고 두번째할 때는 몸이 사라지고 붉은 허공에 앉아 있는 나와 지켜보는 나만 있다.

자비손 명상을 할 때는 짧은 시간이지만 텅빔 속에서 지켜보는 나를 볼 뿐이다.

잠시 누웠는데 호흡이 가파르자 심장 박동이 넓게 빠르게 퍼진다. 진동이 옷을 떨리게 하고 울림이 쇄골을 지나 등뒤까지 떨림이 느껴지는것을 알아차림 했다. 심장 박동 소리가 귀에 들릴대는 막대기로 바닥을 두드리듯 크게 들렸다. 똑같은 박동소리도 아니고 흔적도 없음을 알아차림한다. 이전보다 더 세밀하게 관찰하게 된다. 무스탕 경험이 있어서인지 두려움대신 관찰하게 되고 천천히 움직이며 변화를 본다. 천천히 발을 옮기게 되자 무중력상태 같았다. 없음이 있음이고 있음이 없음이다.

모든 존재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알게 한다.


7월5일 사캬사원

사원에서 명상을 하였다. 오른쪽 허리에 훅하고 강한 통증이 왔다. 이전에도 안 좋아서 치료를 받았던 곳이다. 자비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부처님전에 발원 하였다. 이런 통증에서 자유로워 중생을 위해 자비심을 더 키우겠다고 서원하며 게으르지 않고 자만하지 않고 수행정진 하겠다고... 통증은 이름일뿐인데 때로는 언어에 얽매여 있음을 본다.

차 명상을 하면서 부처님전에 공양 올리고 차를 마시면서 발가락, 손끝, 정수리로 스며들게 한다. 몸은 사라지고 법당과 사원이 붉은 차 색으로 변하였고 텅 빈 그 속에서 앉아 있는 나를 관찰한다. 고요함에 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오고가는 사람들 발자국 소리, 말소리, 티벳스님이 부시는 소라 소리들이 소리일뿐 흔적없음을 알아차림하고 사대로 이루어진 이 몸에 집착하것 없음을 사유 하였다.

옆에 앉은 보살님이 기침을 계속하여 집중이 흐트러져 상대방을 원망하기보다는 상대를 위해 따뜻한 차를 부어주었다. 그리고 부처님전에 간청 하였다. 기침이 덜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한참동안 기침 소리가 멎었다가 다시 들렸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계속 명상을 하였다. 몸이 사라지고 가늠할 수 없게 능선이 넓게 펼쳐진 공간에서 허공과 하나된 나를 지켜 볼 뿐이다. 차가 흔들리고 맨뒷자리라 덜컹거림이 심하였고 냄새도 많이 났지만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흔들림에 몸을 맡기면 흔들림만 있다. 똑같은 몸의 움직임이 없으며, 유리창으로 비치는 햇살도, 차 바퀴가 움직이는 소리, 엔진소리 등등 모든 것은 똑같은 것이 없으며 흔적이 없이 변화해 갈 뿐이다. 하늘의 구름도 찰나찰나 변하는 것을 본다. 모든 사물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의존함을 보여 준다.

차 명상을 하였다. 차를 마시면 목으로 부드럽게 무명천에 스며들듯 명치를 지나 복부로 퍼진다. 차를 만드는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그들을 초대하여 차를 대접한다. 그들의 환한 얼굴을 본다. 차를 다시 마시자 몸에서 버스 안으로 점점 넓게 붉은 노을빛으로 변해간다. 붉은 우주속에 앉아 있다. 차향을 맡을 때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남을 알았다. 늘 선택하고 좋고 싫음에 익숙한 탓이다. 지난 밤 꿈이 떠 올라 스님께도 여쭈었다. 꿈속에서 차로 이동하는데 더 갈 수 가 없다고 하자 내가 유리창을 깨서 부수었다. 그런데 유리 파편에 다른 사람이 다칠까 걱정이 되었다. 내 욕심 때문인가 하고 꿈에서도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스님께서 막힘을 뚫는 것은 좋은 일이라 하셨다.


7월 6일  공주호, 멀리서 바라본 수미산

하루종일 차를 타고 이동했다. 스님께서 계율에 대해서 어제도 오늘도 강력하게 말씀 하셨다. 도덕성이 연결되고 생명존중과 수행에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 하신다. 환경오염은 우리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상호의존관계임을 우리가 망각하고 살 뿐이다.

이번에 갈 수 없는 수미산의 남쪽면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수미산이 과학적으로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고 일러 주셨다. 숙연함과 대자연 앞에 인간의 나약함이 드러난다. 사대로 이루어지고 흩어지면 나라고 할 것도 없는데 존재한다라고 굳건히 믿고 있는 무지를, 더불어 공존함을 다시 일깨워준다.

계속 명상하면서 다녔다. 주변이 점점 산만함으로 붕 떠 있는듯 하지만 나는 오히려 집중이 끊어지지 않고 알아차림이 잘 되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7월 7일  수미산 첫날 

수미산을 향하여 평소보다 늦게 출발 하였다. 여러번 순간 어지러웠다. 전조증세를 알아차림 못하고 계속 놓쳤는데 다르첸에서 숙소인 밀레르빠 수행처까지 오도록 그런 증세는 없었다.

여기와서 계속해서 스님 멘트에 따라 수행한 탓인지 수행이 더 잘되고 진전이 있다. 전체보기가 선명하게 잘되고 앞의 시야가 정확하니 걷는데 걸림이 없다. 스님께서 의식확장이 잘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의식확장이 잘 되니 좌우가 한 눈에 들어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지 않아도  한 눈에 들어온다. 스틱을 잡은 손가락 모양이 흐트러지지도 않는다. 수많은 형상들이 각각의 모습을 보이고,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모양도 모습도 다르게 보일 것이다. 의미를 두지 않으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인다.

다리가 아픈 사람을 만났는데 도움을 줄것이 없어서 다리에 붙였던 파스를 떼어서 붙여 주었고, 13번째 수미산을 순례하는 젊은 처자를 만나서 헝크러진 머리를 묶을 수 있게 가져간 밴드를 주었더니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살이다. 티벳 짜이를 줘서 스님께 드렸다.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순례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신심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걷는 도중에 돌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발 앞으로 작은 수박 크기의 돌이 굴러서 지나갔다. 멀리서부터 들려도 같은 소리도 없고 속도도 다르고 소리의 흔적도 없으며 스스로 구르는것도 아니며 주변의 조건에 따라 다름을 알아차림 했다. 돌이 굴러야 할 조건이 되었고 상호관계성에 의해서 큰돌과 작은 돌이 함께 굴러도 반응은 다르게 들렸다. 그냥 걸었다면 다쳤을지도 모른다.

밀레르빠 동굴 수행터에서 수미산을 바라보며 좌선을 하였다. 관상공양을 하였다. 부처님과 좌우 보살이 금빛으로 보이고 뒤로 여러 보살과 신중들이 수미산을 꽉 채웠다. 영락과 칠보와 육법공양을 올리자 수백개의 헤아릴 수 없는 수미산이 병풍처럼 둘러 쌓이고 그 중심에 앉아서 좌선을 했다. 부처님의 손이 머리에 닿자 이마를 중심으로 머리띠를 두른듯 하였다. 전율이 느껴졌다. 사홍서원을 하고 남은 생 동안 더 수행정진하는데 게으르지 않고 방일하지 않겠다고 발심 하였다.  


7월8일  수미산 둘째날

아침 일출울 보고 늦게 출발하려다 몸 상태에 자신이 없어 일행들과 출발하였다. 어제처럼 전체보기가 잘 되니 호흡도 편안하고 몸이 가벼웠다. 점점 사람들과 거리가 생겨서 혼자서 걸었다. 집중이 잘 되니 저절로 걷는것 같았다. 준비한것을 티벳 순례자들에게 나누어 주며 가는데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햇살이 없으니 조금 추웠다. 손가락 끝이 점점 오그라 들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물을 한모금 마신것이 통증을 유발했다. 토할것처럼 메스꺼움이 올라온다. 잠시 서서 자비수관을 하였다. 위통은 조금 줄어 들었는데 손가락은 펴지지 않는다. 계속 감각을 관찰하며 자비손으로 쓰다듬으며 걸었다. 햇살이 비추기를 바라며 의식을 전체보기에 집중하며 걷자 손도 편안해지고 위통도 사라졌다.

쉬엄쉬엄 걸으며 여러사람들을 보았다. 돌마루 고개를 넘을 때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였다.

수미산을 넘으며 서서 관상공양을 올렸다. 일체중생의 고통이 덜하여지기를 발원하고 돌아가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더 배려하고 괴롭고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나누며 함께하는 삶을 살겠다고 평소에 하는 서원을 다시한번 되새겼다. 부처님과 불보살님들 그리고 신중님들이 수미산을 둘러싸며 우주의 한 모습을 보여 주셨다. 올바르게 수행 하여야 하는 이유를 보여 주는듯 했다. 금빛으로 장엄한 세계가 마치 경전을 보는 듯 했다.

알아차림 하면서 걸으니 마치 등뒤에서 누군가 밀어주는듯 힘들지 않게 넘었다. 서너번 흙길에 미끄러지자 티벳 사람들이 손을 잡아주며 일으켜 주면서 함께 웃었다. 그 미소가 관세음보살이다. 정해진 길이 없어서 여러갈래로 내려오다 보니 알아차림해도 흙길에 미끄러진다. 공양하는 텐트 있는 곳까지 수월하게 의식을 놓치지 않고 걸었다. 

잠시 쉬고 숙소 있는 곳까지 다시 걸었다. 오는 도중 유목민인 아버지와 아들을 만나서 가방에 있던 간식을 주려고 하자 곰빠(사원)에 올리라고 하였다. 이들의 신심과 일상생활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전날 잠을 못자서 쉬고 있으니 다른 순례자들이 같이 가자고 한다. 힘들어서 쉬는 줄 알고 도움을 주려고 한다. 순례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다. 구별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해맑게 웃는 모습으로...

들꽃을 따라, 시냇가를 따라, 순례자들과 함께 걸으며 스스로 생각해도 알아차림이 너무 잘되어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서 수미산을 넘으며 힘들다는 생각이 없었다. 모든것은 상호의존하며 독립된 존재가 아님을... 일어나면 반드시 사라지고... 과거는 되돌아 오지 않으며 미래도 오지 않아서 없고  현재 이 순간도 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아차림하고 사유하며 걸었다. 숙소로 오는 길은 몸이 가벼워 날듯이 왔다. 여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하루였다. 심장 안 좋은 사람 맞느냐고 했다. 너무 잘 걷는다고...


7월 9일  수미산 세째날

밀레르빠의 동굴 수행터인 쥬들북 사원을 둘러보고 다르첸으로 향했다. 지진이 일어 났을때 손으로 받쳐서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군데에 밀레르빠의 수행처가 있는데 신출귀몰한 그는 어디로 갔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수행을 했을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모두 앉아서 좌선을 했다. 수미산 주변이 점점 넓어져 끊없이 펼쳐지고 허공과 하나되어 있다. 들뜸이나 산만함이 없어 마음이 누그러러진 탓인지 편안하다.

일체중생을 위해 오체투지를 하며 가는 순례자들을 보고 나를 돌아본다. 저들의 순수함에,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행자들에게 감사의 차를 올렸다. 수미산에 오기 전에 '영혼의 순례길"이란 영화가 상영되어 보았다. 한 마을 사람들이 포텔라궁을 거쳐 수미산까지 오체투지를 하면서 순례하는 여정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어린이도 임산부도 있어서 순례길에 아이를 낳고 오체투지를 이어가는 모습이 오늘 만난 순례자들을 보자 떠 올랐다. 평지를 걸어서 덜 힘들기 때문에 의식 집중이 흐트러질줄 알았는데 오늘도 잘 되었다. 

들꽃을 보고, 변하는 것에 대한 받아들임이 달라져서일까 황량한 사막같은 주변을 보면서 연민심이 생겼다.

저녁에 스님과 순례대중과  함께 수미산 관상 순례를 하였다. 출발부터 도착할 때까지의 전체가 한 화면에 담기듯 했다. 모든것은 변하고 존재하지 않으며 보여지는것도 실재하는것이 아닌 상호의존적이고 독립적인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사유했다.

금강경에 나오는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이란 사구게가 떠올랐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어리석음을 일깨워줬다.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데 붙들고 있다.


7월 10일  탁림사

수미산을 뒤로 하고 다르첸을 떠났다. 구게왕국 가는 길에 아티샤 존자가 계셨던 탁림사를 갔다. 문화혁명으로 파괴 되었는데 다행히 부처님을 창고에 모셔 놓아서 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라싸부터 보아오던 사원과 다른 모습이었다. 보리도차제론을 저술했던 곳에서 순례대중과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좌선을 했다. 감회가 남다랐다. 일체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발원했다. 좌선 하면서 12일동안 보았던 사원과 이곳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들을 위해 감로수를 부어 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고 점점 티벳이 풍선처럼 커져갔다. 끊없이 내리는 감로수가 모든 티벳 사람들을 적시었다.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도 함께 커졌다.

흙이 숲을 이루어 토림이라고 하는데 구게왕국의 탁림사를 오면서 17세기에 미스테리하게 사라진 왕국의 화려했던 시대를 유추해 보았다. 사막화가 되어버린 토림을 보면서 조건에 의해 생겼다 조건에 의해 사라지고 지나간 과거는 돌아오지 않고 현재도 머물지 않음을 증명하듯 보여 주었다. 여러 토림의 모양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여지는 것도 인연의 결과이다. 독립적이고 존재하는 것이라면 저렇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탁림사를 보면서 무상과 연기에 대해서 사유를 하였다. 자연 광합성 염료를 써서 아직도 탱화들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변하지 않는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 모든것은 생각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다시 떠 올렸다.

버스를 타고 올 때 고도가 높으니 호흡이 가빴다. 잠시 마음을 놓으니 표가 난다. 쉼없이 알아차림 하면서 흐트러짐이 없이 계속 집중이 된다는 것이 이번 순례을 다니면서 행복 할 수 있는 이유이다.


7월11일  구게왕국과 치우사원

어제 내려 오면서 보던 토림으로 변해버린 구게왕국을 갔다. 왕국안에 있던 사원의 벽화는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지만 궁전을 둘러 보면서 무상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10만명이 살던 이곳이 한순간 흙 숲으로 변해버렸다니...

왕국을 내려올 때 무릎을 다친 어린 학생이 친구에게 의지해 겨우 내려 오고 있어서 손수건으로 압박붕대 대용으로 감아주니 통증이 덜한지 덜 힘들게 내려오기에 차 안에 있던 통증 완화용 파스를 줬다. 고통이 덜하여지고 쾌유 하기를 바라며 자비감로수를 해줬다. 크게 다친것이 아니길 바랄뿐이다. 

치우사원으로 향하는데 버스가 움직일 때 모래바람이 날리는 것을 보고 조건에 의해서 일어났다 사라지고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머물지 않음을 알아차림 하였다. 순간에 모래먼지는 사라졌다. 구게왕국처럼 ...

파드마삼바바의 발자국이 남아 있고 "사자의 서"가 발견된 파드마삼바바의 수행터인 치우사원으로 갔다. 지진의 영향으로 사원의 일부가 금이가고 그물망으로 덮여있다.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것은 독립적으로 살아 갈 수 없고 상호의존성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파드마삼바바는 발자국만 남기고 어디로 갔을까? 삶과 죽음에 대해서 잠시 사유하게 되었다.

치우사원 옆에 있는 마나사로바 호수(업장을 소멸한다는 호수) 로 갔다. 인더스강의 출발점이라 성스러운 호수로 불리우며 손으로 들어 올려 가운데가 약간 볼록하다는데 중생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닌데 독립된 존재로 생각하고 애착을 갖게 된다. 잔잔히 흐르는 호수가 움직이는 생각을 잠재운다. 바람결에 호수가 일렁이듯 생각의 바람으로 망상을 피운다.


7월 12일 마나사로바 호수 출발 자동사원으로

밤사이 내린 비 탓으로 수미산과 주변 산들이 눈으로 덮여 장관을 이룬다. 모처럼 은하수를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하였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원인과 조건아 맞지 않았음을...

호수에 비친 아침해를 보면서 존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아차림 한다. 호수가 잔잔해 보이지만 출렁임을 유추한다. 오늘은 사람들의 마음 움직임을 보고 마음이 아픈 날이다. 인과와 인연법을 생각하며 배려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나의 생각을 상대에게 주입시키고 사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본다.

자비감로수를 하면서 타인에게 감로수를 부어 주면서 가슴과 머리에 통증이 왔다. 내 주변에서 점점 범위를 넓혀 전 우주로 향하여 감로수를 부어주고 마지막에는 나 자신이 관자재보살이 되어 감로수를 부어 주었다. 여러번 감로수를 붓는 동안 계속해서 틍증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더니 깨끗해졌다. 차안에 있던 사람들, 티벳 사람들에게 감로수를 부어 주면서 발가락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감로수를 부어주며 관찰한다. 흐르는 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역류할 수도 없으며 멈춤이 없다. 붓지 않으면 흐를 이유도 없음을 알아차림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비심을 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오후에 자동사원으로 갔다. 티벳땅이 나찰녀의 몸으로 되어 있는데 관절을 눌러 지은 사원이 "자동사" 이라 한다. 다른 사원과 다르게 선으로만 그려놓은 벽화를 보면서 아름다움에 빠졌다. 훼손되고 방치된 사원의 모습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무지함을 사유한다. 그 시대의 화려함과 문화적 탁월함에 대해 감탄 하면서 그 당시의 생활상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지나간 과거는 돌아오지 않고 새롭게 돌봐야 할 벽화들도 아직 오지않은 미래의 일부분일뿐이다. 현재 이 순간에도 벽화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에 집착하고 타인의 괴로움에 안타까움이나 연민보다는 함께 비난하고 야유를 보내는가? 수행하는 사람으로써 불자로써 많은 생각을 하게 한 하루였다. 


7월 13일  시샤팡마봉을지나 팅그리 도착

오늘은 장시간 차를 탔다. 유목미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에 잠시 멈췄다. 호수에 비친 모습과 들꽃을 관찰 하였다. 같은 꽃이지만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 이곳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원인과 조건이 맞아 이 주변에만 유독 많이 피어 군락을 이룬듯 하다. 같은 환경인데도 같은 꽃이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하고 사유를 하었다. 사람과 비교해 보았다. 같은 공간이라도 꽃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다 같지 않을 것이다. 유목민 또한 이곳의 환경이 조건에 부합되어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어린 꼬마도 아주머니도 해맑다. 이방인의 모습이 서로 생소하지만 좋은 마음으로 대하기 때문에 함께 웃을 수 있다.

도중에 히말라야 14봉 중 막내인 시샤팡마봉을 가는 도중에 보았다. 어린 목동이 양떼들을 돌보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학교에 있을 시간이다. 두 어린 목동의 휘파람 소리에 양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휘파람 소리는 흔적이 없지만 찰나의 소리에 의한 파장으로 움직임이 따른다. 두 목동과 양들은 관계성임을 사유했다.

구름에 가려 산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가 점점 구름이 걷히면서 산 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고 정상을 덮은 구름도 과거가 되어 다시 돌아오지 않고 쌓인 눈은 계속 변하고 있음을 유추한다. 다시 구름에 가려 정상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우리는 모두 행복해 하였다. 스님께서 구름이 걷힌 것은 명상을 한 탓일지도 모른다 하셨다. 에너지의 파장이 구름을 움직였는가 보다.

시샤팡마봉만 있어도 아름답지 않았을 것이다. 푸른 들판과 양들과 흐르는 개울물이 있어서 더 아름다웠다. 상호관계 속에서 좋은 시너지를 낸 것이다. 모든 존재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빛을 발하지 않는다.

팅그리로 가는 길에 스님께서 계율과 도덕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자비감로수 명상도 여러번 하였다. 나보다는 주변과 더 넓은 세계로 감로수를 부어 주었다. 베이징에서 나비의 날개짓이 미국에서는 토네이도가  되듯 많은 사람들이 덜 고통 속에서 지내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7월 14일  롱북 사원,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바라보며, 

에베레스트가 멀리서 보이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아침 6시에 출발 하였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명상 하면서 가다가 잠이 오는 것을 알아차림 하면서도 잠을 자고 싶은 욕구가 더 크기 때문에 명상을 포기하고 잠을 잤다. 억지로 깨어 있으려고 하지말고 자야 되는 시간에는 자야 된다고 하신 스님 말씀을 잘 들으려고(?)...

롱북 사원에 들렸다. 여기도 파드마삼바바의 수행처인데 문화혁명 때 파괴되어 새로 복구하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많은 사원을 다니면서 "어떤 인과로 한사람의 명령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원들이 파괴 되었을까?를 사유 하는데 비구니 스님들의 경전을 독송 하시는 소리에 갑자기 법성게 중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구세십세호상즉, 잉불잡란격별성" 게송이 떠 올랐다. 인연과 인과를 다시 생각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가 가까운 곳에서 잠시 쉬었다. 이곳의 들꽃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에델바이스도 색이 전혀 다르다. 환경의 중요성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얼마전에 1회용 빨대가 코를 막은 바다 거북이의 사진이 해외포토에 올라와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편한 것들이 얼마나 생태계를 파괴 시키는가를 경각 시키려고 올린 사진이다. 구름이 많이 가려 아쉬움이 남지만 특별한 들꽃을 보고 온 것으로 만족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어설픈 지론을 갖고 있어서.

오후에는 스님께서 인과와 계율, 도덕성에 대해서 말씀 하시고 달마대사의 말씀 중 재가자가 해야 될 일 4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첫째, 예경을 하고, 둘째, 염불을 하고, 세째, 경전을 독송하고, 네째, 때때로 성지순례를 한다.

버스 안에서 계속 자비 감로수를 하였다. 물이 흐르는 것이 눈에 보이는듯 했다. 맑은 물이 흐르면서 스며들어 촉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몸은 사라지고 허공과 일체가 된다. 차로 이동 하면서도 계속 수행을 하고 다니니까 행복함 자체이다. 의식이 흐트러지지 않고 주변을 보면서도 생각에 끌려 다니지 않으니 편안하고 몸도 가볍다. 사람들의 이야기소리, 시끄러운 차 소리도 때때로 끊기어 고요하다. 들리는 것은 머무르지 않으니 집착할 일이 아님을 확연히 안다. 그리서인지 마음이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는다. 간혹 눈쌀 찌푸리는 일이 생겨 표현을 할 때도 있지만 알고 하는 행동은 남음이 없다. 담아두지 않으니 상대한 대한 불편함이 지속되지 않는다.


7월 15일  시가체 출발, 라싸를 거쳐 성도에 도착

순례가 끝나가니 비가 계속 내린다. 알룽창포강을 따라 버스로 이동해서 라싸로 들어가 비행기로 성도에 도착 하였다.

일부에서는 강물이 범람하고 우리가 지나 온 길에도 산사태가 났다고 한다. 티벳에 비가 많이 오면 한국은 폭염이 된다고 하는데 벌써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한다. 불어나는 강물을 보면서 중국에서 행하는 산업개발과 수많은 도로를 만드는 것을 보면서 자연은 더 파괴 될것이고 우리나라는 환경오염 뿐만 아니라 날씨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티벳 순례를 하면서 여러번 사유를 하였다. 앞으로 몇년 후에는 티벳이라는 곳이 전혀 다른 곳이 될것이라는 것을 곳곳의 공사 현장이 보여 주었다.

라싸를 떠나는데 웬지 마음이 먹먹했다. 지금 보고 있는 라싸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7월 16일  인천 공항에 도착

긴 순례를 무탈하게 마치고 모두 건강하게 돌아 올 수 있어서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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